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성 로마 제국/역대 황제 (문단 편집) == 개요 ==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Iron_Crown.jpg|width=100%]]}}}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Holy_Roman_Empire_Crown_(Imperial_Treasury)2.jpg|width=90%]]}}} || || [[롬바르디아 철관]] || [[신성 로마 제국 황제관]] || [[신성 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들 목록 문서. 신성 로마 제국의 군주들은 [[프랑크족]]의 [[게르만]] 전통에 따라 [[선거군주제|투표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후보가 되는 인물들은 전임 황제의 가문들과 생판 다른 남이 되는 게 아니었고, 가급적이면 조금이라도 혈연 관계(부계, 모계, 방계, 먼 친척, 사위 등등)가 있는 사람이 후보로 추대되었다. 물론 그에 걸맞은 세력과 지지는 필수였다. 이러한 선거 관습은 [[대공위시대]] 이후 [[선제후]] 제도가 정착되어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투표로 선출되면 일단 [[로마왕]](Rex Romanorum) 또는 독일왕(Germaniae Rex)이 되었으며, 이후 [[교황]]으로부터 대관을 받아야만 황제로 부를 수 있었다. 교황으로부터 대관식을 받지 못한 경우, 로마왕(독일왕)이라는 칭호에 그쳤다. 그러나 황제와 교황간의 대립이 이어지면서 교황이 대립하는 황제를 견제하기 위해 파문을 남발하거나 대관식을 집전하지 않는 수법이 악용되자 점차 교황의 영향력을 막기 위한 방안이 강구되었다. 그 결과 1356년 [[카를 4세]]는 《[[금인칙서]]》(golden bull)로 황제 선출에 있어 교황의 개입을 막으려 했으며, 이어 [[막시밀리안 1세(신성 로마 제국)|막시밀리안 1세]] 황제부터는 교황에 의한 대관식을 하지 않고, 선출과 동시에 그냥 황제 칭호를 썼다.[* 다만 대관식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독일 대주교가 대관식을 치뤘다.] 막시밀리안 1세는 황제의 공식 명칭으로 '''Imperator Romanus Electus'''(Erwählter Römischer Kaiser; 선출된 황제, 선출황제)[* 이후 [[라틴어]]가 완전히 사문화되고 [[독일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Römisch-deutscher Kaiser로 불렀다.]를 사용했으며, 이 명칭은 신성 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계승, 유지되었다. 막시밀리안 1세 이후 모든 황제는 선출 이후 교황 대관없이 황제가 되었다.[* 막시밀리안 1세 이후 황제 중 그의 손자인 카를 5세가 교황 대관을 유일하게 받았지만, 카를 5세는 선출로 황제가 된지 11년이 지난 후에 포로로 잡은 교황에게 받은 대관이므로 큰 의미가 없다.] 막시말리안 1세 이후 '로마왕'이라는 작위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태자]], 즉 차기 제위 계승자를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